The Origin, History, and Missionary Values of the Suncheon Tuberculosis Resthome
Hyeon Kang Song
Human Sciences · 2023-11
Abstract
1960년대 순천에서는 결핵병원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건의료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주도한 이는 남장로교 선교사 로이스 린튼이었다. 로이스는 그 병원의 일관된 결핵퇴치프로그램을 통해 순천지역사회의 절박한 요구에 적절히 응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순천결핵병원은 그 규모가 작은 의료시설이었기에 여느 다른 대형 선교병원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학문적 접근도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로이스의 순천에서의 결핵퇴치사업 운영은, 단순한 선교 상황의 산물이거나 또는 독지가의 시혜적인 구호 활동의 결과라고 치부할 수 없는, 나름의 배경과 정신을 갖고 있다는 특이점을 갖는다. 즉 로이스와 그 남편 휴 린튼은 남장로교의 제3세대 선교사로서 외조부 유진 벨과 부친 윌리엄 린튼 등이 담지하고 있던 19세기 개척자들의 초기 선교 이상(理想)을 거의 흔들림없이 계속해서 한국 선교 현장에 구현하려고 했던, 높은 계승성과 충성도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독창성이 아니라 선행하는 역할 모델이 지시하는 바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한 데에 있다.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선교사들은 청교도적 사명을 가장 의식적으로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당대에 세계를 복음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피선교지의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 등이 바로 그들 속에 남아 있는 청교도적 유산이었다. 내한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이러한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것들은 가급적 원형을 유지하면서 계승되었다. 로이스 부부의 행위양식을 설명하는 두 가지 기제는 바로 복음전파 그리고 사회개혁이다. 결핵요양원은 피선교지 한국을 근대적인 사회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서구 선교사들의 거의 마지막 결정체였다. 그리고 결핵요양원은 순천 지역사회 근대화 과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훌륭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하나의 의미가 있다.
MeSH terms
- Tuberculosis
- Ancient history
- History